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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핀 인사이트/칼럼

[뉴스핀 칼럼] 다름을 존중하되, 상식을 지키는 용기 – 전한길을 둘러싼 오해 속에서

by 핀 에디터 2025. 6. 10.

환갑 나이에 40년 지기 친구와 닭갈비에 소주 한 잔.
언제나처럼 웃음으로 시작한 자리가, 뜻밖에 날카로워졌다.
이야깃거리는 ‘전한길’.
며칠 전 내가 <뉴스핀>에 쓴 글 때문이었다.
 
“왜 하필 그 사람을 썼어?
너 그런 스타일 제일 싫어하잖아.”
 
친구의 질문에 나는 담담히 답했다.
“난 전한길에 대해 특별한 감정 없어. 그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이 있으니까, 다룰 가치가 있다고 본 거야. 그게 뉴스잖아.”
 
하지만 친구는 고개를 저었다.
친구는 전한길을 거의 혐오 수준으로 싫어한다.
그의 눈엔, 내가 쓴 글조차 ‘편들기’로 보였던 것이다.
결국 글을 쓴 나까지 싸잡아 정신 나간 사람 취급을 받았다.
어떤 설명도, 어떤 맥락도 통하지 않았다. 그냥 도루묵이었다.
 
이 장면은 단순한 개인적 갈등이 아니다.
지금 우리 사회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는 ‘입장 강요’와 ‘편 가르기’의 축소판이다.
 
나는 전한길을 옹호하지도, 반대하지도 않았다.
다만 그는 지금 왜 이토록 대중적 파장을 일으키는가,
그리고 그 현상은 우리 사회의 어떤 결을 드러내는가에 주목했을 뿐이다.
 
하지만 단지 그를 언급했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이미 ‘한쪽 편’에 선 사람이 되었다.
비판의 대상은 글이 아니라 나였다.
 
이쯤에서 묻고 싶다.
우리는 정말 ‘다름’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
보편과 상식이라는 공통 감각은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가?
 
말로는 관용을 외치지만, 실제론 ‘내 편’에게만 자유를 허용한다.
의도가 어긋나거나 균형이 조금만 흔들려도,
곧바로 진영 판별기가 작동하고, 인격 낙인이 찍힌다.
논의는 사라지고, 감정만 남는다.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 "그건 왜 그런 시선으로 봤냐"고 묻는 용기보다,
그저 "너는 틀렸다"는 선언이 더 빠르고, 더 쉽게 소비된다.
 
그날 대화는 그렇게 끝났지만, 내 마음엔 오래 남았다.
나는 친구에게,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우리는 지금, 상식 위에 대화를 복원해야 한다.
불편한 말이라도, 나와 다른 시선이라도, 그 자체로 소중한 단서일 수 있다.
진영이 아닌 상식 위에서 다시 대화를 시작하자.
 
그날 친구에게도 다시 전하고 싶은 말.
“그래도 넌 내 친구다. 우리가 다르기에, 더 오래 함께 갈 수 있는 거야.”